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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숨바꼭질.

잡문 2007/08/23 16:18 by 은빛늑대

불길했던 간밤의 꿈 때문이었을까. 병국이의 부음(訃音)을 전해 듣던 그 날은 아침부터도 왠지 기분이 이상했더랬다. 분명히 나쁜 일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찜찜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마치 꾸무럭한 날의 일기 예보와도 같이, 그의 죽음은 이미 기정사실이면서도 좀처럼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순직이라니, 강력계 형사도 아닌 일개 순경이 이 작고 안전한 나라에서 순직이라니, 녀석이 얼마나 장난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에이, 네가 무슨...' 하며 농담이나 허풍 정도로 치부하고 말 이야기였다. 막상 삼베로 지은 수의를 입고서 관 속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병국이의 싸늘하게 식은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 까지는, 그래, 어쩌면 나를 비롯한 동기들과 친구들은, 이 자식이 어디를 다쳐 놓고서는 또 무슨 어마어마한 허풍을 치고 있나 보다, 하는 한 가닥의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워낙에 발이 넓었던 녀석의 빈소는 정말로 신기하리만치 번잡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았던지, 빈소는 죽음보다는 오히려 삶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가족들은 미처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고, 육개장은 새로 끓여 내는 족족 동이 났다. 죽마고우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다녔나, 하는 질투 아닌 질투와 함께, 참으로 병국이 다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친구들을 몰고 다니다시피 했던, 언제나 생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던, 끼니를 걸러 가며 어렵게 자취를 하던 나를 찾아 와서는 책 속에다가 만 원 짜리 몇 장을 말도 없이 몰래 쑤셔 넣어 두고 가던, 빈소는 병국이의 그런 모습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이 밝았다.

빈소를 지키다가 깜박 졸았던지, 나는 어렸던 시절의 꿈을 꾸었다. 언젠가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국이와 함께 숨바꼭질을 했던 날의 꿈이었다. 그 날은 정말이지 몹시도 더웠지만, 아이들은 십 몇 년 만의 최악의 무더위라는 날씨도 잊은 채 뙤약볕 아래를 잘도 뛰어 다니며 놀았다. 나는 술래였고, 아이들은 다들 제각각 미리 보아 둔 곳을 찾아서 몸을 숨겼다. 숨바꼭질에서 술래는 귀찮은 것이 아니라, 가장 재미있는 역할이었다. 불안과 쾌감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목덜미를 잡아다가 전봇대 옆에 하나씩 줄줄이 세워 두는 것이 그렇게도 통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찾았는데도 병국이만큼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춤 추고 나오면 살려 준다' 를 외쳐도 병국이는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은 자기네 집 옷장에 숨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고, 병국이네 부모님들은 새벽이 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들 걱정에 잠도 못 이루고 있다가 결국 실종 신고를 했단다. 다음 날 아침에 옷장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던 병국이는 영문도 모르고 국자로까지 맞았다고.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우리들은 병국이가 아무리 투덜거려도 녀석을 숨바꼭질에 끼워 주지 않았다.

꿈 이야기와 함께 그 때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 주었더니, 친구들은 웃으면서도 '그래, 병국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거야' 라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한 상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엉뚱한 데가 있는 녀석이었다.

찾을 수도 없는 데로 숨고 지랄이야, 새끼가. 같이 놀지도 못 하게... 누군가가 담배 연기를 뱉듯이 웅얼거린 그 한 마디에, 장내는 웃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소리들로 조금씩 채워져 갔다.

2007/08/23 16:18 2007/08/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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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stell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은 사람' 같은데... 많이 안타깝네요. 짧은 글이지만 여운이 길어요.
    (...저어어... 감히 은빛늑대님 글 보고 이러니 저러니, 평가하는 듯한 말을 할 깝냥이 못 되는 걸 잘 아니까, 그냥 읽기만 하고 갔었는데... 첨으로 몇 마디 남겨요. (뻘쭘...))

    2007/08/23 21:06
    • 은빛늑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어렵게 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스스로도 다듬을 데가 많아 보이는 걸요.

      2007/08/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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