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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지치다.

잡문 2006/07/13 16:18 by 은빛늑대
펜을 들고 멍하니 하늘만 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텅 빈 수첩을 보았다. 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잠시 역동적인 구름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생각의 끈은 그 구름처럼 뇌리에서 흩어져 버렸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변명을 해 보지만, 그런 이유만으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와 정신적인 피로 사이에서 한참을 멤돌던 나의 의지는, 일단 달콤한 것이라도 먹으면서 뇌에 에너지를 공급해 두자는 쪽으로 갈피를 잡았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은 아니건만, 굳어 버린 머리를 다시 굴리는 데에는, 달콤한 것이 윤활액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심각하지 않은 생각으로 피로를 풀고자 할 때에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좋다. 내가 아는 사람들, 또는 내가 만들어 낸 사람들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거나, 그러한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단편 소설을 만들어 본다거나, 유치하고 식상한 소재를 가지고 시를 써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비록 블로그에 공개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글들은 못 되지만, 나는 이따금씩 생각에 지치고,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렀을 때면 이런 글들을 마구 끄적여 대곤 한다. 자신의 요리에 지치고 질린 요리사가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글을 쓰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을 쉬고자 소일할 때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양쪽 모두 '글' 이기는 하지만, 블로그를 통하여 공개하는 것과, 단순히 재미 삼아 쓰는 글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저 우스운 일이고, 달리 생각하면 굉장히 심각한 사태가 아니겠는가.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자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평생 겪어야 할 고문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것을 쉬기 위한 소일거리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면, 글을 쓰는 일은 더욱 더 괴롭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에, 기억은 나지 않는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문장을 읽은 적이 있었다. '생각을 글로 쓰는 것과,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하는 것은 다르다' 라는 문장이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의 전형인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한 다음에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미리 상상을 통하여 이미지를 확립한 글들은 즐겁고도 시원스럽게 써 내려 갈 수 있는 것이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생각을 해야 하는 글들은 그 과정이 힘들고 괴롭게 느껴지는 게 - 그것이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 아닐까?

지금은 더위와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힘들고 피곤한 시기이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 아니라, 더욱 혹독한 훈련과 처절한 사유인 것 같다. 연속된 생각에 지치고, 글을 쓰는 데에 지치기는 했어도, 나는 그것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2006/07/13 16:18 2006/07/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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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umnaseld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처럼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갈겨쓰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찔리는 글이로군요 ;;;;;;

    2006/07/13 17:14
  2. xiza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글이나 그림으로 포착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전 어제 글을 쓰다가 도저히 안써져서 "몰라몰라 나안해!"이러면서 그냥 자버렸어요;;

    2006/07/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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