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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부스러기.

잡문 2007/01/25 16:28 by 은빛늑대

"정말 사랑해서 사귀는 걸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나는 태연하다고, 그렇게 애써 자신을 다독여 왔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무심한 말을 씹어 삼킨 순간, 내 가슴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2년이라는 기간,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들을 함께 견뎌 온 사람의 가슴에다 커다란 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그는 굉장히 놀란 듯, 혹은 큰 상처를 받은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고, 나는 죄책감과 구역질 같은 괴로운 느낌에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은 아프게 시작된, 그리고 항상 어렵고 비밀스럽게 이어져 온 사랑은 이제 좌초의 위기 앞에 놓였다는 사실을, 그 단 한 마디의 말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나는 직감했다. 조금 더 행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더 숨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의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의 삶의 방향타를 돌려 놓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를 악물고 나를 놓지 않으려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행복에 겨워 있을 때에도 그런 씁쓸한 꼬투리 같은 감정은 늘 마음 속의 한 켠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은 그저 외면하고, 묻어 두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항상 묻고 싶었다. 왜 그랬었느냐고, 정말로 나를 사랑해서였느냐고, 아니, 정말로 사랑했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니었느냐고 묻고 싶었다. 강제로 발가벗겨지고, 또 '겁탈'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을 당했던 경험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항상 무엇인가를 얻고자 했었다. 손해를 보는 것이 싫었다. 내가 더 많이 다쳤으니,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받고 싶었다. 차가운 태도로 상처를 주고, '헤어지자' 라는 말로써 그의 마음을 여러 번 흔들어 놓고, '사랑한다' 라는 고백을 무덤덤하게 받아 넘기는 동안, 나는 약간의 가학적인 즐거움을 느꼈다. 나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 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그가 애처롭게 메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떠날 수가 없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사랑을 구걸할 때, 어쩌면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볼 수 없을 그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시궁창 같은 쾌감을 느꼈다. 그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았다. 더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나쁜 생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별을 유예하고, 내가 그에게 마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했을까? 사랑 때문에 사귀었던 것일까? 서로에 대한 의무감과 복수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 이라는 감정은 그저 부스러기 정도로만 존재했던 건 아닐까? 그런 아픈 생각들이 가슴을 찌르는 바람에, 나는 집으로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조금 흘렸다. 두려워서, 미안해서, 그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2007/01/25 16:28 2007/01/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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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윗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컷 고민하는 특권을 누리신 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2007/01/25 19:37
    • 은빛늑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특권이라...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특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2007/01/2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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