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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계절.

잡문 2007/11/11 16:01 by 은빛늑대

부쩍 쌀쌀해진 바람 때문에 어깨를 가볍게 떨며 부산스럽게 집을 나서던 나는 문득 멈추어 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미처 눈치를 채지 못 한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참 높아진 하늘은 단지 푸르른 색깔만이 아닌,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히 그 창공 너머에 존재할 광활한 우주에 대한 어떤 공상에 빠지게끔 하는 오묘한 빛을 품고 있다. 바야흐로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나부끼는 낙엽보다도, 대기에 감돌기 시작한 쓸쓸한 정화(淨化)의 향기보다도, 조금씩 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한 기분 좋은 외로움보다도, 그리고 외투 자락을 흔들며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보다도, 나는 그 한 조각의 하늘을 통해 비로소 가을을 느낀다.

나는 이 계절이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완성되고 정리되는 시기이자, 내가 사랑하는 독서와 커피, 그리고 산책 따위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바로 이맘때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교정의 벤치에 앉아 고양이처럼 한껏 여유를 부리는 것도 요즘 같은 가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그렇게 게으름을 즐기는 천성 탓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눈동자만큼이나 맑고 드높은 하늘, 옛날 사진처럼 온통 가라앉은 세상의 빛깔, 그리고 시(詩)와 젖은 낙엽 향기로 가득 찬 공기...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도 가을을 가을답게 만드는 재료들이다. 그리고 그런 재료들로 이루어진 가을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영감을 준다. 그것이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다.

다른 계절들에도 제 나름대로의 매력과 낭만은 있지만, 가을만큼 사람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계절은 없다고 생각한다. 꿈이나 희망, 사랑, 아름다웠던 과거에 대한 좋은 추억들, 혹은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가을이라는 계절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이 세상의 말로써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힘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하나, 둘씩 꺼져 가는 생명의 빛들이, 이듬해에는 또 다른 새로운 생산의 씨앗이 되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아, 죽음과 재생이라, 고전적인 주제가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가을이면 고독을 느끼고, 누구나 가을이면 시인이 되는 모양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짧아져 가는 가을은, 오히려 그로 인해 더더욱 절실하게 아름답다. 언젠가 또 한 번의 가을이 왔을 때, 그것은 최후의 가을이 아닌, 풍성한 수확과 약속의 가을일 것이기에.

2007/11/11 16:01 2007/11/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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