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의 첫 단추를 끌러 헤치려는 그의 커다란 손등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구른다. 그것이 땀이라고 착각한 모양인지, 그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는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서, 이제 알몸이 된 나는 침대 위에서 더욱 소리 높여 운다. 단지 한 덩어리의 죽은 고기에 불과한 나 자신이 슬퍼서 울고, 마치 아귀처럼 굶주린 듯이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주둥이에 쳐 넣는 스스로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운다. 달도 모습을 감춘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쌉싸래한 살갗 냄새가 나는 자취방 안에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나의 얼굴은 그만 몰래 감추어져 버리고 만다. 키스를 하고, 육체를 탐닉하고, 울고 있는 나를 모르는 채 가쁜 숨만 몰아 쉬는 그가 미워서, 나는 밤이 새도록 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소모적인 인생은 너무나도 길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하루는 정말이지 지겨우리만치 길게 느껴진다. 지난 스물 두 해 동안, 때때로는 무의미하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도 했었고, 또 가끔씩은 필요치도 않은 일에 열을 올리며 삶을 소비하기도 했었지만, 그 어느 순간도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나날들처럼 무미건조하고 서글프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에 얽메여서 스스로를 까맣게 잊고, 자신을 파괴하면서 시시한 만족을 얻고, 너무나도 반짝이던 꿈을 이제는 그저 꿈으로만 치부하면서 다친 마음을 달래고, 좁디 좁은 공간 속에서 안주하며 다만 유치하게 '죽어 갈' 뿐인 하루가 계속 이어지고, 흔해 빠진 삶의 양식에 나는 차츰 익숙해져 간다. 한 층 더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비명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묵살된다.
일전에도 썼던 적이 있듯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썩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기준에서 어긋날 수록, 나는 더더욱 냉혹하게 스스로를 몰아 붙인다. 그것은 '노력' 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문' 에 가깝다. 어쩌면 조금이나마 더 잘 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너는 대체 왜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고, 네가 가진 능력이 고작 그 정도 뿐이냐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한다. 물론, 어쩌다가 가끔씩은 그런 방법이 효과를 볼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자신에 대한 저항은, 결국에는 '자기 혐오' 라는 씁쓸한 입맛을 남기고 만다. 그러나 가장 슬픈 사실은, 내가 블로그를 제외하고서는 누구에게도 이런 사실들을 털어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이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상태에 이르고 만다.
믿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그럴 때에 가장 힘들게 느껴진다. 신도, 나도, 다른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광활하고 거친 바다 위에서 오롯이 날고 있는 한 마리의 흰 갈매기처럼 날개를 쉴 곳이 없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는 '도림사 대밭' 이 필요하다. 언제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칠 수 있는 깊고 으슥한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채로 방아쇠를 당긴다거나, 손목에다가 깊은 흉터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누구에게나 어떤 배출구가 하나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가족들, 친구들, 심지어는 D에게조차도 그런 역할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토악질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나를 소홀하게 대한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우울한지를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어딘가로 달리고 싶다. 나는 숨고 싶다. 나는 어딘가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맑게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살아 가는 하루, 하루들이 모두 다 신선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도 그렇지 못 하다. 이 순간의 나는 다른 누군가들에게 교훈이나 감동 따위를 줄 수 있을 만 한 사람이 못 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소설가로서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또 슬프고, 나는 또 베갯잇을 적신다. 심장이 말라 붙어 버린 사람이라 한들, 자신을 위해서 흘릴 단 한 방울의 눈물만은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고, 나는 정말로 많은 순간들을 참아 왔다. 이제 나는 운다. 지치도록 운다. 마음에 쌓인 잿더미가 눈물에 씻겨 내려 가기만을 소망하면서 홀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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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2007/07/01 22:24그래도 넌 많이 아는 편인겨...
2007/07/02 16:19힘내세요.. 남의 일 같이 들리지 않는군요. 가슴을 쓸면서 읽었습니다.
2007/07/23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