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차 금전적인,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의 거리 위를 걸어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나의 모습을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써 남기고 싶다고 말이다. 마치 쳇 베이커(Chet Baker)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 처럼,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과 무거운 마음이 묻어 있는, 그러니까, 우유를 듬뿍 부어 넣은 커피와도 흡사한 느낌의 여행이라면 더욱 좋겠다. 혼자서 가볍게 떠나는 편이 어울릴 법 한 종류의 여행이지만, 나의 모습을 온전하게 필름 속에 담아 줄 수 있는 과묵한 사람이 동행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여행으로부터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단 하루의 인연을, 언젠가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곱씹게 될 풋내 나는 낭만을, 이별과 회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연출하는 이 영상의 내용은 이렇다. 까만 코트를 입은 채로 낡고 어지러운 역사(驛舍)에 서서 들어 오는 기차를 바라 보던 나는, '줌 인' 되는 카메라의 렌즈를 따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고서는, 느린 걸음으로 기차에 오른다.(이 순간, 카메라는 계단을 밟는 나의 발을 주시하는 상태로 잠시 멈춘다.) 다음 순간, 로마의, 파리의, 런던의, 뉴욕의, 시애틀의, 피렌체의, 프라하의, 프랑크푸르트의, 베니스의, 빈의 거리를 느긋하고 유쾌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컷 어웨이(Cut away)' 형식으로 빠르게 흘러 간다. 하지만, 이 장면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바로 나의 발, 나의 그림자, 역광과 산란광에 의하여 흐릿하게만 비치는 나의 실루엣이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던지듯이 내딛는 나의 발을 따르다가, 가끔씩 춤을 추듯이 달려 가는 나의 모습을 그린다.
(굳이 '발' 을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는 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은 걷고 있을 때에 가장 솔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폭, 걸음의 속도, 굽은 허리, 축 처진 어깨, 눈빛 등의 특징들로써 그 사람의 내면을 슬쩍 엿볼 수 있다. 걷고 있을 때의 나 자신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나의 발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솔직함 - 젊은 시절의 당당한 솔직함 - 을 스스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설정이랄까.)
그렇게 걷는 모습만이 흐르기를 십 수 분, 어디에선가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 온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 한 사이에 흑백으로 바뀐 화면은 갑작스럽게도 기차 속의 풍경을 비춘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가, 차창 밖으로 흐르는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가 점차 고조되어 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화면은 기차의 흔들림에 따라 조금씩 떨리다가 어느 순간 까맣게 물들고, 몇 초 동안 먹먹한 기차 소리만이 배경을 장식하다가, 영상은 막을 내린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자아 도취적인 만족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멋진 떠남' 을 기획해 본 적이 있지 않겠는가.
내가 연출하는 이 영상의 내용은 이렇다. 까만 코트를 입은 채로 낡고 어지러운 역사(驛舍)에 서서 들어 오는 기차를 바라 보던 나는, '줌 인' 되는 카메라의 렌즈를 따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고서는, 느린 걸음으로 기차에 오른다.(이 순간, 카메라는 계단을 밟는 나의 발을 주시하는 상태로 잠시 멈춘다.) 다음 순간, 로마의, 파리의, 런던의, 뉴욕의, 시애틀의, 피렌체의, 프라하의, 프랑크푸르트의, 베니스의, 빈의 거리를 느긋하고 유쾌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컷 어웨이(Cut away)' 형식으로 빠르게 흘러 간다. 하지만, 이 장면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바로 나의 발, 나의 그림자, 역광과 산란광에 의하여 흐릿하게만 비치는 나의 실루엣이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던지듯이 내딛는 나의 발을 따르다가, 가끔씩 춤을 추듯이 달려 가는 나의 모습을 그린다.
(굳이 '발' 을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는 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은 걷고 있을 때에 가장 솔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폭, 걸음의 속도, 굽은 허리, 축 처진 어깨, 눈빛 등의 특징들로써 그 사람의 내면을 슬쩍 엿볼 수 있다. 걷고 있을 때의 나 자신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나의 발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솔직함 - 젊은 시절의 당당한 솔직함 - 을 스스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설정이랄까.)
그렇게 걷는 모습만이 흐르기를 십 수 분, 어디에선가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 온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 한 사이에 흑백으로 바뀐 화면은 갑작스럽게도 기차 속의 풍경을 비춘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가, 차창 밖으로 흐르는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가 점차 고조되어 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화면은 기차의 흔들림에 따라 조금씩 떨리다가 어느 순간 까맣게 물들고, 몇 초 동안 먹먹한 기차 소리만이 배경을 장식하다가, 영상은 막을 내린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자아 도취적인 만족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멋진 떠남' 을 기획해 본 적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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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을 잠시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2006/10/20 01:19국내 여행은 눈이 내릴 때나 한 번 해 보려구요. 해외 여행은 아직 따뜻할 때 가 보고 싶구요.
2006/10/20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