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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구두의 변.

잡문 2006/06/30 16:03 by 은빛늑대
더러운 물로 가득 찬 웅덩이에 발을 깊숙히 밀어 넣고 나서야, 앞으로는 아래 쪽 세상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며 걸어 다니겠다는 다짐을 했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축축하게 젖은 구두를 내려다 보니, 구정물 외에도 종이 조각이나 머스터드 소스 등, 지저분한 것들이 많이 묻어 있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스팔트에 긁힌 자국들, 모양새가 찌그러진 부분들, 마찰로 인해 녹은 부분들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2만 원 정도에 불과한, 브랜드나 이름조차도 없는 싸구려 신발이고, 나의 걸음 걸이가 다소 험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버린 데에는,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나 자신의 책임도 클 것이다.

구두에게는 코가 있다. 우리가 알지 못 하는 구두의 어느 부분에는 입과 눈, 그리고 귀도 달려 있을는지도 모른다. 구두가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은, 그 누구도 구두들에게 말을 걸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입과 눈, 그리고 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녀석의 귀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납작한 코에다가 무작정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는 그간 너를 신고 다녔던 은빛늑대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너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처우도 개선해 주겠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표정을 보아 하니, 녀석은 아무래도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말도 마라,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이제는 옆구리가 터져 버릴 지경이다, 이제 와서 처우 개선이 다 뭐냐, 좋았던 시절은 벌써 다 지나 버렸다, 신발로서의 내 인생도 끝났다, 곱게 신지 못 할 거라면, 적어도 자주 닦아 주어야 할 게 아니냐, 냄새 나는 발을 억지로 집어 삼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 아무래도 녀석의 '입' 은, 사람이 발을 집어 넣는 바로 그 구멍인 모양이다. - 언젠가는 그 놈의 발목을 똑 분질러 버릴 것이다... 그런 목소리들이 들려 오는 것만 같아서, 나는 황급히 녀석을 신발장 속에 쳐 넣어 버리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다른 신발을 신어야지.
2006/06/30 16:03 2006/06/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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