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wolf's Daily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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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뜨겁다. 한동안 즐겁게 입고 다녔던 '레이어드 룩' 도 이제는 옷장 속으로 들어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즐겨 신던 농구화의 높은 발목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무릎과 허벅지, 그리고 겨드랑이에 땀이 찬다. 다행히도 냄새는 나지 않지만, 그다지 좋은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덥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서, 아무 곳에나 맥이 빠진 듯이 앉아 있노라니, 두 꼬마 녀석들이 손을 꼭 잡고 신나는 엇박자의 걸음으로 뛰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 것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아니, 아직은 나도 어리지 않은가? 무슨 차이가 있기에?

그러고 보면, 나는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여름에야 땀띠가 나는 것이 싫다며 기피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손에서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너도 나도 꾀죄죄한 손을 꼭 잡고서는, 어제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를 신나게 떠들어 대곤 했었다.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땀띠가 나도록, 겨울에는 손등이 부르트도록, 줄창 손을 잡고 다녔던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집보다도 큰 가방을 몇 개 씩이나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서로의 손을 잡고 다닐 정도의 여유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언제부터 친구들과 손을 잡고 다니지 않게 된 것일까? 친구가 없어서라거나, 손을 잡는 것에 질려 버렸다거나, 사람들을 믿지 못 하게 되어서라는 둥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친구' 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동성 친구' 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을 터인데, 손을 잡는다는 행위 자체가 매우 진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보니, '게이' 라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고, 아직은 용기가 부족한 나는, 별 것 아닌 일로 자충수를 두고 싶지는 않다.(어쩌면 이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일는지도 모른다. 친구들도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손을 잡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지' 라는 편견, '어른들이 우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훨씬 다양하지' 라는 오만, 그리고 '쑥스럽게 그런 걸 어떻게 하나' 라는 불필요한 내숭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법,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우정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감정일 터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 들의 허례 허식에 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새끼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약속의 가장 확실한, 그리고 구체적인 상징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하는 약속이었다. 그리 대단한 스킨쉽도 아닌데, 나는 어째서 이런 것 조차도 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숨바꼭질 할 사람 여 여 다 붙어라' 라고 외치던 시절도,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어깨 동무를 한 채로 '우리집에 왜 왔니' 를 외치던 시절도, 이제는 추억 속의 그리운 장면일 뿐이다.

몇 일만 지나면 장마 기간이 온다. 조금 이른 것 같기는 하지만, 뜨거운 하늘을 식혀 줄 비가 반갑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비를 맞으며 돌아 다니는 일도 언젠가부터는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장마 기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꼭 한 번 다시 해 보고 싶다. 산성비며 탈모가 다 뭐란 말이냐. 태풍 속에서도 신나게 몰아 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웃던 나인데. 흠뻑 젖을 정도로 비를 맞고 나면, 기분은 오히려 상쾌해 지게 마련이다.
2006/06/09 16:09 2006/06/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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