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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의 원천.

잡문 2007/03/23 16:15 by 은빛늑대

요 근래에 들어서, 나는 전에 없이 바쁘게,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 알아서 잘 해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의지도 있다. 식사도 가능한 한 거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고, 생전 않던 청소도 매일 같이 두어 번 씩은 하고 있는 데다가,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책을 읽는다.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자신에게 충실한 기분 만큼은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나는 여유 있는, 또 가끔은 중차대한 사건들이 있는 삶을 사랑하지만, 사소하고 기초적인 노동들로 가득 찬 인생에도 그 나름의 즐거움은 있는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사소한 생활에 찌들어 있다 보니,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계획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서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계획' 이란, 썩 괜찮은 소설 한 편을 써 내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단 한 편의 글을 써 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잃게 되고, 결국에는 비정상적인 행동들만을 반복하게 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재미있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글이지만, 그래도 짬이 날 때 마다 노트에 적어 둔 착상들을 다시 재구성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다 보면 진실된 창조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헌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소설은 커녕,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는 것 조차도 어렵기만 하다. 물론,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고, 듣고, 접한 것들에 대해서 화를 내고, 글을 써야만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 할 뿐이다.

즉, 지금의 나에게는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예전엔 그나마 '당장 쓰고 싶다' 라는 충동이라도 가끔 일곤 했지만, 지금은 그저 의무감에, 아니면 하루 만큼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 별 의미도 없는 잡담 나부랭이를 긁적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너는 반드시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압박감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자신도 지금은 그런 일종의 사명감에 시달리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내가 생각해 왔던 일들이 모두 다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혼자서 살게 되었고, 내킬 때에 내키는 만큼 마음대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애인을 불러 들여서 - 상당히 어렵겠지만 - 흥청망청 즐길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만족스러운 상태인 것이다.

일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인간에게는 적당량의 고통과 고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왜냐 하면,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기력을 주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를 살아 있게 한다. 내가 이 작은 세상 속에서 여전히 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끔 해 주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들을 취하기를 요구한다. 고통은 끊임 없이 나를 찔러 댄다.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게 하고, 뒤로 물러 서지 못 하게 한다. 분노를 일으키고, 질투를 일으키고, 몸부림을 치게 하고, 문제를 향해 달려 들게 한다. 행복한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을 바라게 마련이므로.

부러 고통을 초래하려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기를 기대하고,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일말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죽은 사람 뿐이다. 푹신하고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려면, 그리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면,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2007/03/23 16:15 2007/03/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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