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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다.

잡문 2006/09/09 16:07 by 은빛늑대
스물 한 살이라는 나이가 아직도 어리기만 한 탓인지, 뭇 사람들과 살을 섞어 가며 더불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생각이 길어지고, 나와 상대방의 이해 타산을 따져 가며 관계의 매듭을 풀었다, 조였다 하는 일이 너무 싫다. 이런 저런 목적들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해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편안한 친구가 필요해서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이런 끔찍한 것이 바로 그 '사회 생활' 이란 말인가? 마치 '내가 얼마 만큼의 손해를 입었으니, 너도 이 정도는 해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라고 윽박을 지르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버리고 싶다.

악재는 겹쳐서 온다고 하던가. 가장 힘들 때에 나의 곁에 있어 주리라고 믿었던 D는, 몹시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피했다.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고, 차라리 그만 헤어지자는 말이 입술 언저리까지 치솟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전화를 끊었다. 지금의 그는 타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문제들로부터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건강에 대한 무신경 때문에 몸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다. 이렇게 아무도 아껴 주지 않는 몸뚱아리 따위는 어떻게 되어 버려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만 있었더라면,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어떤 불길한 예감 따위는 금새 잊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죽음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들의 곁에 선다. 딱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는 없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나도 놀랐다. 자칭 '낙천가' 인 내가, 설마 그런 생각을 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K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저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에이, 그래도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라는, 생명에 대한 일말의 집착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아, 죽으면 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네' 라는 식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하여 이 세상에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지, 나에게 남아 있는 평생의 시간 동안에 나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인지, 죽어 버리면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고 마는 삶이 왜 소중한지를 말이다. 하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 모든 화두들에 대한 해답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찾아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일도 생긴다. 그것이 내가 '그래도 사는' 이유이다.
2006/09/09 16:07 2006/09/0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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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umnaseld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죽었을 때 슬퍼할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저는 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_- 쾌락주의자 TS~ Tempus Fugit, Carpe Diem.

    2006/09/09 16:23
  2. ZF.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빛늑대님 글은 평소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 댓글은 못달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는 있기 마련입니다. 은빛늑대님도 저에게는 고마운 존재고, 가치있는 존재인걸요.:D

    2006/09/09 18:34
  3. 미고자라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동감되는군요. 거 참, 가끔씩 모든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대로 죽어도 별 상관 없을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_-a
    뭐,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저는 못 죽어서 삽니다. 자살은 너무 무서워요! 그리고 못 죽어서 살면서도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 다 하고 삽니다 -_-;

    2006/09/09 18:37
  4. 림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물 한살에 그래도 산다 라...
    엮시 대비되는군요~
    이제 서른인 나는 아무래도 못 살겄다 하고 있는데..

    부럽다.
    그래도 산다 라고 말해버릴수 있는 그 젊음^^

    2006/09/09 20:26
    • 은빛늑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면 '못 살겠다' 라고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_-); 아직도 인생의 쓴 맛을 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6/09/09 21:02
  5. Agune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있는게.. 힘들때 자기 바쁘다고 신경 안써주고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보다 더 화나고 서럽다죠;; 스물 하나라는 나이는 아직도 많이 어린 나이인가봅니다..
    은빛늑대님도 저도.. 나이 하나씩 더 먹고나면 괜찮아 질려나요...^^''

    2006/09/09 22:00
  6. 달고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늘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 이란 소릴 들었답니다. 제가 좀 제 스스로를 못챙기는 타입이예요. 게으름이 너무 심해서 밥을 잘 안챙겨 먹는데, 그냥 문자 그대로 보면 웃길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 사람들은 심각하게 걱정하더군요.. 죽음이라는게, 젊은 사람들에겐 갑자기 오는 존재(자살이나 급사)로 느껴지는때가 많은데. 제가 오늘 들은 저 말은 천천히 죽어간다는 의미인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기도 했어요. 전 삶 대한 집착은 있어서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은 못하지만, 저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진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도 오래 살수록 재밌는걸 많이 보기때문에, 오래 살고싶어요. 문제는 오래 살려는 노력을 안할뿐.<-다시 말하지만 게으름;

    2006/09/10 01:03
    • 은빛늑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래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거기에 메달려서 '몸에 좋은 행위' 를 하지는 않아요.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말이죠.

      2006/09/10 15:22
  7. 서랍속의동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와서. 이제 막 사회에 나오려 하다보니. 다가오는 사람을 자꾸 피하려 하게 되고.. 결국은 또 제 스스로 제게 상처를 주는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어요. 아는 선배 분들은 계속 스스로 열어보라고 하시지만. 그게 말처럼 쉽다면 고민하지도 않았겠지요..
    요즘엔 사람들과 산다는게 제일 어렵다고 느껴지고 있어요..

    2006/09/10 01:25
  8. 맘모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꼭 한번씩은 느끼는 거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구!! 나도 다른 집 가정보다 정말 몇배나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야 ! 우리엄마는 더 그렇구..ㅜ-ㅜ 그런데 난 엄마 호강 시키기위해서 살꺼야!(힘들게 하는 일이 더 많지만서도;;언젠간 꼭 호강시킬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는 맘으로;;-ㅅ-;)그리고 힘들때 되면 나를 불러요 >ㅅ</ 아직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나지만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보고 '아, 지금 이사람이 무척 힘들구나'라는 정도는 인식하고 상담해줄순 있으니까 ~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 난 늘 하면서 살아 ..(가정에서의 어려움이나 ,,압박등 때문에 .. )그치만 막상 내가 죽으면 한명이라도 슬퍼하는 사람이 있기때문에 안죽고 사는거야~ 오빠가 죽으면 나 무지 슬퍼할꺼니까 죽음 알아서 해!!-ㅅ- !그리고 내가 유치원때부터 계속 빌어왔던 소원이 뭔지 알아??"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와 친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죽기전까지는 절대 죽지않기를,, "이게 내 소원이야 ㅇㅅㅇ난 이 소원때문에서라도 못 죽어!>ㅅ</내가 오래살아야 내 사랑하는 사람 , 나와 친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살꺼아냐? 안그래??>ㅅ<쿄쿄쿄 /나는 아직 이 소원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믿어! 이 소원 빌고 난 뒤부터는 내 주변에 죽은 사람들이 없었거든 ㅎ-ㅎ그래서 난 계속 이 소원을 빌꺼야 ! ^^ 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이 있더라도!!(그 사람은 저주를 퍼부을테다 !!+ㅁ+아흥!)

    2006/09/10 11:22
  9. 맘모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풋,, 귀엽네~ ㅋㅋㅋ 겁도 많다라 ~ ㅋㅋ

    2006/09/10 23:23
  10. gues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와 벗어난 댓글이긴 하지만....어린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어리시네요...어른(혹은 속물)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때로는 죽음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훗.

    2006/09/11 14:34
  11. 베리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음이 항상 곁에 도사리고 있는 삶을 사는지라(병 때문에), 누군가 죽고 싶다던가 하는 말들을 하면 솔직히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은빛늑대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 정말 죽고 싶은 분이 계시면 안락사 시켜드립니다. (...)

    2006/09/12 03:22
    • 은빛늑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지병(?)이 있어요. 뭐, 당장에 죽을 만큼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가끔씩 아플 때면 그게 제 생명력을 조금씩 갉아 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6/09/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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